얼굴만 봐도 인생을 아는 사람, 관상가
주인공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천재 관상가이지만 원래는 양반 가문의 큰아들이었으나 아버지가 역모에 연루되어 참수당해 처남, 아들과 함께 시골에 은둔한다. 그 후 돈을 벌기 위해 관상을 공부하여 이름을 알리고 기생의 제안에 따라 한양으로 올라와 기재를 알아 본 김종서에 의해 수하가 되어 활약하고 이를 눈여겨본 문종은 죽음을 앞두고 내경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김종서와 함께 수양의 역모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한명회의 계략으로 역모는 성공하고, 아들은 죽으며, 처남은 벙어리가 된다. 예전에 자신의 관상을 본 적이 있었는지 말년이 복인지 흉일지 헷갈려 했는데, 둘 다 일어나 버렸다. 이후 팽헌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폐인이 되어 은거한다. 은거한 내경을 찾아와 수하로 들어오라는 한명회에게 내경은 인간사 흥망성쇠의 부질없음을 토로하며 말을 하기 전 묘한 상이라고 하며 "당신은 목이 잘릴 팔자"라는 악담에 가까운 저주이자 예언을 퍼붓는다. 결국 한명회는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정적을 만들지 않으려 생애 내내 근신하였고, 임종이 임박했을 때에는 그의 예언이 틀렸다고 결론내리며 죽지만 사후 관속의 시체가 끌려나와 목이 잘림으로서 저주이자 예언이 실현되었다. 주인공이 아들을 죽고 처남은 벙어리가 되는 장면에서 후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차라리 한양으로 올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독백이 생각난다. 주인공 자신이 관상가이지만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고 관상은 처음과는 다르게 계속 바뀐다고 독백한다.
사람의 얼굴과 역사의 만남
천재 관상가인 주인공은 처남과 아들, 이렇게 셋이서 칩거하며 살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은 학문에 뜻을 두어 한양으로 가 과거시험을 보고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지만 내경은 과거를 보는 것을 반대한다. 반면 처남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독려해준다. 한양에서 유명한 기생 역시 어느 정도 관상을 볼 줄 아는데, 기방을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해 주인공에게 한양으로 올 것을 제안하고 마침 아들이 한양으로 떠난 참이라 주인공은 한양행을 결심한다. 그 후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주인공은 호랑이상인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는 명을 받아 뜻을 따른다. 한편 수양대군의 속셈을 이미 꿰뚫은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경계하고자 한다. 수양대군을 처음 보고 그에게서 늑대상을 본 내경 역시 김종서의 뜻에 동참하게 되는데 내경과 팽헌, 연홍 일행은 수양대군이 잠든 틈을 타 그의 관상을 살짝 바꾸어 마침 관상에 관심을 갖게 된 단종으로부터 하여금 수양대군을 경계하게 하는 데까진 성공한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김종서와 함께 수양대군을 몰아내기로 거사일을 정하지만 그 거사가 이루어지기 전, 수양대군의 충실한 오른팔인 한명회가 내경의 아들이자 정계로 진출한 진형을 붙잡아 진형의 눈에 염산을 부어 그의 눈을 멀게 만드는 계략을 꾸민다. 그 전부터 진형이 김종서의 인재 등용 방식을 비판했던 터라 팽헌은 순간적으로 이것이 김종서의 짓이라고 판단하고 분노하여 수양대군에게 달려가 김종서의 거사계획을 낱낱이 고발한다. 이미 모든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진형의 사고와 팽헌의 고발을 알게 된 내경은 그것이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계략이었음을 바로 깨닫고 팽헌에게 탄식한다. 그리고 급히 김종서의 집으로 달려가지만, 그와 동시에 수양대군이 무리를 이끌고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온다. 수양대군은 길을 지나던 중 갓끈이 풀려 잠시 실례를 하겠다고 말하며 다가온 뒤 심복을 시켜 김종서와 뜻을 같이 했던 궁궐 대신들을 모두 처단한다. 완전히 자신의 아군을 잃은 단종은 결국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주고 의기양양하게 개선하던 수양대군은 주인공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수양대군에게 온갖 아첨을 하며 자신의 아들을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만족하며 진형을 풀어준 수양대군은 그대로 뒤돌아 가다가 말을 세워 주인공에게 왜 처음엔 내가 왕이 될 거라고 말하지 못했느냐며 활 시위를 당겨 진형을 맞춰 죽인다. 시간이 흐른 뒤. 내경과 팽헌은 어느 바닷가 외딴 오두막에서 속세와 연을 끊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팽헌은 계유정난 이후 자신의 급한 성질을 자책하는 마음에 목을 망가뜨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 둘에게 연홍과 한명회가 찾아온다. 비웃듯이 자신의 관상도 봐달라는 한명회에게, 내경은 나중에 목이 잘릴 상이라고 말한다. 내경의 말과 달리 한명회는 무사하게 오랜 세월을 살다 죽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역적으로 몰려 묘를 파내어 부관참시 당한다.
계유정난 이후
계유정난은 1453년(계유년), 조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후 단종이 정통성과 능력도 완벽하고 폭정이나 실정을 일삼은 적도 없었는데다가 어쨌든 세종과 문종의 고명 대신으로서 단종을 보호하는 입장에 있던 신하들을 죽이고 단종도 귀양보냈다가 끝내 죽였기 때문에 반정을 정당화할 명분이 없었다. 또한 세조가 조선의 사직을 계승하고 임금으로써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것을 세조가 역쿠데타로 수습했다고 주장한다. 계유정난과 세조의 집권 과정에서 조선 전기에 문무를 상징하던 기관인 집현전과 총통위가 폐지되었다. 그리고 정난을 이끈 공신들에 의해 관학파가 훈구파로 변질되면서 적장손 왕위 계승이라는 원칙이 무너지고 42명이나 되는 공신들의 세력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왕권이 약화되는 왕권을 약화시켰으며 조선의 정치계에 혼란을 일으키자 세조의 손자인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려고 사림파를 등용하게 된다. 심지어 공신 세력들이 왕권을 등에 업고 반대 세력들 축출에 앞장서는 등 부정부패와 전횡으로 인해 세조가 여러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은 오히려 나빠졌다. 게다가 세조 본인이 신하들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과는 별개로 공신들의 전횡에 손을 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결과적으로 관료들의 전횡이 심각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조가 왕권이 강한 것처럼 보인 건 세조를 지지한 공신들의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세조는 자신에게 대놓고 반항한 이들 정도를 제외하면 공신들이 어떤 악행을 저지르건 처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조선의 왕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왕 자리가 찬탈당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보호막 역할을 할 공신들을 많이 세우게 되었는데, 이 공신들과 반대편 대신들 그리고 공신들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들 간의 갈등은 조선 전체의 정국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왕실어른의 부재로 인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성공이 가능했던 정난이었기 때문에 후대 자손들인 조선 왕들은 이를 교훈 삼아서 왕비가 죽으면 무조건 계비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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