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건 못 참아, 까칠한 주군
역사적으로도 까칠하기로 유명한 예종이 영화에서도 까칠하다. 주인공인 예종은 스스로는 기민한 직감력과 강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보니 모든 사건을 직접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대마왕이다. 극중에서는 조선 최초로 과학적인 수사를 지휘하려고 하지만 예종의 곁에는 단 한명, 오보라 불리는 이서뿐이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서 툭하면 궁을 넘어 잠행수사를 펼치고 조선의 임금으로써 위엄을 갖추고 다른 이를 내세워 수사를 진행해도 되지만 말보다 발이 빨라 자신이 직접 사건을 파헤친다. 예종은 굳이 신하들과 벗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영화에서 보면 이렇게 통제가 안 되는 왕은 처음이라며 공신들이 수군대지만 세조를 닮아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공신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버지인 세조가 계유정난에 함께 한 공신들의 전횡을 눈감아 주면서 힘을 키웠고 예종은 세자시절부터 그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자라온데서 경계심이 생겼을 것이다. 공신들이 사사건건 참견과 세조부터 힘을 키운 남건희라는 공신이 역모를 꾀하고 사건을 파헤쳐 결국은 예종의 손에 죽는다. 이렇게 성격이 급해서 앞뒤 안 가리고 자신이 먼저 튀어나가며 재주가 많은 임금이 공신들의 힘을 억제하고 다른 신하들의 의견까지 귀담아 들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조선을 이끌었다면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건을 직접 쫓는 임금과 신입사관
조선 예종 때 조선 각지의 저자거리에 흉흉한 참언이 적힌 허수아비가 내걸리고 예종이 은밀히 함길도(함경도)로 파견했던 관리는 대낮의 저자거리에서 갑자기 온몸에 불이 붙어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허수아비에 적힌 글귀의 주된 내용은 밝음이 가고 기쁨이 온다는 것인데 역모를 뜻하는 방이 걸린 것이다. 숨진 관리의 시신을 직접 부검한 예종은 누군가가 백린을 이용해 갑작스러운 불길을 일으켰음을 알아내고,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사건 수사에 나선다. 한편,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 소속 사관으로 임관한 윤이서는 부푼 꿈을 안고 대궐에 첫 등청을 한 첫 날에 직제학을 따라 조선의 임금인 예종을 대면하게 된다. 예종은 윤이서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음을 전해 듣고 자신의 비밀스러운 수사를 도울 조수로 쓰기 위해 늘 임금의 곁에 따라 붙어 모든 언행을 기록하는 사관으로 임명한다. 그러던 중 상소에 올라온 귀신물고기를 봤다는 상소를 예종이 직접 파헤치려 고래잡는 사람들과 갔다가 배가 뒤집혀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것을 이서가 구해낸다. 작살에 명중이 되어도 잡을 수 없었던 귀신물고기에 대해 생각을 하는 찰나 이서가 물고기 끝에 거북이를 봤다고 말한다. 귀신물고기의 소문을 찾아 장영실의 후손인 무당을 찾아가는데 정작 만난 무당이 귀신물고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예종은 귀신물고기의 원리를 찾게 되고 장영실의 후손이 최근 샀다는 집으로 밤늦게 몰래 찾아가고 그 집에서 비밀통로를 찾아 들어가게 된다. 귀신물고기의 실체를 알게 되었지만 무당에 의해 그곳에 갇히고 무당은 병조판서에게 아버지가 붙잡혀있어 어쩔수 없이 그들을 죽이려 불을 붙인다. 집은 폭발하지만 다행히 그 집 속의 비밀통로를 찾아 예종과 이서는 무사히 빠져나간다. 예종이 숙면을 위해 평소 자주 마시던 차와 상극인 약재를 스스로 먹게 해 위독하게 만들고 어의를 포섭해 죽이려 하지만 이서가 예종을 살리기 위해 중화제를 먹이고 전하가 깨어나기전에 또 무슨짓을 벌일지 모른다며 몰래 전하를 데리고 궐밖을 빠져나가 도망다닌다. 도망을 다니던 예종과 이서는 병조판서가 그 뒤를 쫓아 결국 이서와 예종을 찾아내어져 위기를 맞으려는 그때 예종의 운검인 흑운이 나타나 병조판서와 대신 싸운다. 병조판서의 부하들은 다 쓰러지고 병조판서랑 대등하게 싸우는데 병조판서가 칼끝에 조그만 칼을 빼네 급습하는 바람에 흑운이 진다. 그리고 병조판서가 다시 전하를 죽이러가지만 이서가 그 앞을 막아서고 그 사이 예종이 깨어나 병조판서와 싸워 이긴다. 그리고 연루된 조정대신들도 죽여 도성밖에 효수하였다.
예종 즉위 이후
예종은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성년이 되기 전에 즉위하면서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였으나 친정을 하는 예종을 본 후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세자 시절에는 총명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특별히 개진하지 않아 여론을 존중하는 왕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예종은 신하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짧은 재위 기간 내에 벌어진 '남이의 옥사'로 인해 찌질한 왕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예종은 옛 계유정난 이후 형성된 측근 위주의 구공신들과 이시애의 난 이후 새로 등장한 신공신들을 서로 견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세자 당시부터 병조판서로 벼락 출세한 남이를 위험하게 생각했는데 예종 즉위 후 병조판서 남이를 의산군 겸사복장으로 강등시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후에 유자광이 남이가 역모를 꾸몄다고 고변하자 심문 끝에 죽였다. 또한 당시 지지부진할 수 있었던 경국대전 편찬 작업을 강행한 것도 역시 예종이다. 아버지 세조는 신하들과 벗을 하면서까지 신하들을 다독이고 이해를 시켜가며 일을 했으나 그의 아들인 예종은 굳이 신하들과 벗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예종은 즉위하고 15개월이 지나서 족질로 승하한다. 당시 예종의 죽음에 왕실과 신료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죽었을 때 나이는 만 19세로 조선의 역대 국왕 중에서 타살이 아닌 이유로 사망한 인물 중 가장 단명한 왕이다. 예종 스스로는 강력한 위기 의식과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 때문에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일들을 억지로라도 이끌면서 심신이 퍽 지쳐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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