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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나라의 운명, 병자호란 이후의 정세 두명의 충신, 서로 다른 신념이 영화에서의 주제는 주화파와 척화파는 조선의 주된 학파였던 성리학의 이념간의 대립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뜻을 전하는 주화파의 최명길은 전쟁의 참화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다는 생각과 살아있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대로 방법이 생기고 백성들과 어렵더라도 사직을 지키고 살아가자는  뜻으로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병자호란에 볼모로 끌려갔다왔다가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돌아와 인조에 의해 독살되었던 소현세자를 보면 알 수 있다.반면,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라는 격언처럼 척화파의 김상헌은 명나라와의 군신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명나라외의 오랑캐인 청나라와는 전쟁을 계속 이어가고 죽어서라도 이념을 지키며, 전쟁의 대의는 우리에게.. 2024. 5. 23.
안시성 : 5천대 20만의 승리, 1차 고당전쟁 이후 반역자의 낙인이 찍힌 성주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의 집권에 대한 찬성을 하지 않고 홀로 당나라의 20만대군을 맞아 안시성을 지킨 안시성주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때문에 수나라, 당나라 등의 중국에 나라가 건국될 때마다 전쟁을 경험하였으며, 수나라의 침공을 저지하고 전쟁의 승리를 이룬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과 당나라의 20만대군의 침공을 저지하고 전쟁의 승리를 이룬 안시성주의 안시성전투가 대표적인 중국에 맞서 싸워 이긴 대표적인 전쟁이다.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고 수나라를 없앤 당나라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연개소문은 집권에 찬성하지 않은 안시성주를 좋게 봤을리 없다. 중국에서 수나라군을 물리친 당나라군의 20만명이라는.. 2024. 5. 22.
노량, 끝 그리고 시작, 정유재란의 끝. 조국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운 영웅명량해전이 끝나고 1년 후인 1598년 12월, 주인공은 히데요시가 사망을 한 뒤 왜군들이 급작스럽게 퇴각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는 조국을 범하지 않게 적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 생각한다.우리 나라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뜻의 속담처럼 임진왜란에 이은 정유재란으로 한번 침략전쟁을 겪으면서 두번, 세번째의 전쟁이 발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다시는 침략하지 못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역사적으로 전쟁은 명분을 가진 주동자가 존재하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주동자였던 히데요시가 죽음을 맞이하고, 또 적은 타국에서 7년간의 전쟁으로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히데요시를 가장 옆에.. 2024. 5. 20.
한산, 거북선의 출현과 재조명, 한산도대첩 이후 임진왜란 양상 위대한 명장 이순신의 시작1545년생인 이순신은 문관집안에 태어나 늦은 나이인 만31세에 비로소 1576년 무관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의 육군 무관으로 첫 임관하였다. 처음엔 육군이었다. 이후 1586년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로 임지를 바꾸어 재직하였고 재직 중인 1587년 9월의 여진족의 기습공격으로 벌어진 녹둔도전투에서 이겼다.하지만 앞선 녹둔도전투에서 아군의 피해가 커서, 북병사 이일의 탄핵을 받고 백의종군하는 위치에 서기도 했다. 그 뒤 두번째 여진족과의 교전에서 승전하여 복직하였다. 그 뒤 전라관찰사 이광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쪽의 무관, 행정관 등을 역임했고 1589년 정읍현감 재직 중 류성룡의 추천으로 고사리첨사가 되고, 절충장군, 만포진첨사, 진도군수 등을 거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임진.. 2024.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