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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량, 끝 그리고 시작, 정유재란의 끝.

by 진온아빠 2024. 5. 20.

 

조국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운 영웅

명량해전이 끝나고 1년 후인 1598년 12월, 주인공은 히데요시가 사망을 한 뒤 왜군들이 급작스럽게 퇴각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는 조국을 범하지 않게 적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나라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뜻의 속담처럼 임진왜란에 이은 정유재란으로 한번 침략전쟁을 겪으면서 두번, 세번째의 전쟁이 발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은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다시는 침략하지 못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명분을 가진 주동자가 존재하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주동자였던 히데요시가 죽음을 맞이하고, 또 적은 타국에서 7년간의 전쟁으로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히데요시를 가장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에야스의 세력이 쇠락해가는 히데요시의 세력보다 강해짐에 따라 히데요시의 가신들은 본국으로의 철군을 서두르려했을 것이다.
명량해전 이후 적의 전쟁양상은 조선의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전으로 해오고 있었으며, 연합군의 전략으로 육상으로의 이동과 해상으로의 이동이 여의치 않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던 탓에 성에 꼼작없이 갇혀 있었고 이순신장군이 지키고 있는 해상으로 빠져나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진다.

한편 주인공과 협력사이인 제3세력은 전쟁의 양상이 승리의 양상으로 변해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더이상의 전투는 바라않는 주인공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주인공은 전쟁의 신념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것이다.

그런 제3세력과 끊임없는 설득을 하지만 출전하지 않으려는 그들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주인공만을 바라보고 따르는 부하들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겪어온 전쟁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각나며, 죽은 그들을 기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여 애처로워 보이면서 장엄해 보였다. 또한 전쟁의 끝을 보기위한

주인공의 굳센의지가 진군을 독촉하는 북을 치는 장면에서 보였고, 죽어서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 또한 보였다.

조선을 구한 최후의 전투

주인공은 적군이 주둔한 성의 위장 포위망 유지한 뒤 조선 수군은 적군을 맞으러 노량으로 출정한다. 출정한 배 위에서 주인공은 준비해둔 전쟁 중 조선 수군 희생자 명부를 받아들고 거기에 쓰인 이들을 한 명씩 회상하고 명부를 태우며 전의를 다진다. 노량으로 접근한 적군은 주인공의 조선 수군 함대와 조우한다.

적의 선봉군 함대를 향해 포를 발사하고, 구선을 투입시킨다. 궁지에 몰린 적의 선봉군은 깃발로 뒤의 본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본군은 더욱더 속도를 높여 전진할 것을 명한다. 뒤이어 주인공은 함선들을 일자로 내보내 적선에 충돌시켜 멈춰 세우고는 기름을 붓고 물러나서 불화살을 날리는 등의 화공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전투의 한복판에 있는 거북선들은 적선의 대장선을 발견하고 돌진하나 화포에 피격당해 침몰한다. 침몰하는 거북선을 본 적군의 사기는 크게 오른다. 뒤이어 적군의 함대가 선봉이 되어 더욱 속도를 높여 조선 수군에 접근하고 백병전을 한다. 주인공은 부하의 함대를 구원하고자 전군에 진격을 명해 조선 수군 전 함대가 공격하기 시작해 적군이 밀리기 시작한다.
피격당한 적들의 함대가 11시 방향의 바닷길이 열려 있으니 저기로 주인공을 유인내겠다며 전속력으로 그쪽으로 향하지만 가로막혀 있는 포구였다. 어느새 쫓아온 조선 수군이 일자 모양으로 포구를 막은 주인공에게 제3세력은 많은 적들을 쓰러뜨렸으니 이만 전투를 끝냈한다고 의견을 얘기했고, 주인공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주인공의 요청으로 명나라 수군이 들어와 포구 앞을 막는다. 적군은 포구를 봉쇄한 명 수군을 향해 돌진해오고 적군은 정교한 진법으로 명 수군에게 다가간 뒤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명나라 수군도독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운다. 이때 주인공은 준사를 보내 명수군도독을 구하지만 준사는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한다.

양측의 함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완전히 뒤엉킨체 3군의 백병전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일출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북채를 잡아들고 북을 치면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기 시작한다. 백병전이 한창인 전장에서 총소리가 한 번 더 울리더니 이순신의 북소리가 끊긴다.

그러자 싸우고 있던 아군세력은 왜 북소리가 들리지 않냐면서 의아해하던 찰나 다시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북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적의 수장은 끝이 없다면서 패닉에 빠지고 대장선 안으로 들어가 귀를 막으며 쓰러지며 누가 저 북소리 좀 멈춰보라고 말하면서 패배의 충격으로 괴로워한다.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병사들이 모두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는 침통한 분위기였는데 전사한 이순신을 보며 절규한다. 수많은 백성들이 장례 행렬 주위에 늘어서서 통곡하고 아이들은 길가에서 즐겁게 뛰어놀다가 장례 행렬을 지켜본다.

정유재란의 끝

노량해전 당시 일본 측에서는 조선 장수가 이순신이라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질 것을 알면서도 전투를 해야만 했던 게 일본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등 조선에 갇혀 있는 가신들을 구출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었다.

일본은 노량해전에서 조선에게 대패를 당했으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해 목적을 달성했다. 8500여명 살리자고 두 배 인원과 군함 300여척을 잃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이 지휘한 해전 중 가장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해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임진년 부터 이순신이 지휘했던 전투에서 발생한 조선 군의 사상자는 적어서 파괴, 침몰한 일본 수군의 함선의 수가 많은 기록이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해전에서는 이순신 본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야간전과 진형이 뒤엉킨 근접전과 난전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해상전투들과 달리 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목표는 "퇴각" 이었고 조선군의 목표는 "격퇴" 가 아닌 "섬멸" 이었어서 그렇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싸우려는 적이 상대라면 상대와 거리를 조절하며 화포를 쏘는 전술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멀어지려 퇴각하는 적이 상대라면 달라붙는 전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이 왜를 필연적으로 포위 후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해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