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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사 : 고려생환작전, 고려 멸망과 귀환

by 진온아빠 2024. 5. 25.

 

최선의 선택으로 최상의 상황을 만드는 사람

고려 말 고려의 사신단이 사막에서 떠돌 때 주진군의 대장 최정의 명령을 받으면서도 지친 주진군들을 잘 다독여 달래며 어떻게든 한명이라도 더 살려서 고려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인물인 진립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황판단력이 대단하며 정세를 잘 읽고 자신의 상관을 잘 보좌하지만 그의 무리한 명령에는 항명도 하는 일류군인, 자신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서 가는 방법을 찾으려하고 고려에서 같이 넘어온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더 많이 살려서 함께 조국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가장 크며,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다. 마지막 보루인 토성에서의 전투에서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원나라군인에게 포위되자 허무한 죽음보다는 원나라군인과 싸워서 살아가자는 방향을 택해 몽골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지휘관의 모습도 보인다. 상관이나 주변인물들이 어려운 상황에 정신이 나가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자포자기상태로 싸우려하자 지치고 포기할 때 옆에서 지켜보며 타이르고 설득하여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행동하게 하는 인물이다. 상황을 최선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상활이 그렇지 못 해 죽어가는 주변인물들을 차마 안타까워 보지 못하며 안타까워 절규한다. 누구보다 남의 아픔을 아파할 줄 아는 인물이 무사의 진립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진립과 같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진정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한 사람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살아갈 만 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가자

고려의 부사 이지헌를 필두로 일행 12명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간첩으로 몰려 귀양을 간다. 귀양을 가는 사신 일행은 귀양가던 길에 감시하는 명의 군사들이 원 제국 기병의 습격으로 모두 죽고 기병들이 고려인들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로 몽골 기병들이 쏜 화살에 운없게 맞아죽은 일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목숨을 살려주지만 사막에 고립된다.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최정은 대부분의 고려 사신들의 죽음을 이유로 독단으로 귀향 결정을 내려 객잔까지 가까스로 가는데, 고된 여정으로 사신의 마지막 생존자 이지헌이 죽게 된다. 객잔에서 원기병에게 납치당한 명나라의 공주 부용이 자기를 살려달라는 신호를 하자, 최정은 부용을 구출하여 명나라에 명분을 세우고 고려로 돌아갈 방책을 세운다. 그러나 부용을 구출하기에는 사신단의 희생이 너무 크다고 진립이 반대를 하지만 최정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원기병과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붙잡혀있던 여솔을 풀어주어 전투를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구출한 명나라 공주 부용을 사이에 두고 여솔과 최정의 갈등이 심해진다. 원나라 기병이 쫓는 가운데, 부용이 고려로 가는 배를 주겠다고 하여 간신히 해안 토성에 도착하지만 이미 폐허상태이고, 뒤쫓던 원기병도 토성까지 이른다. 원 기병들은 고려인들이 명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원 제국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부용 공주만 내준다면 모두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갈등 끝에 최정이 거부해버리자 결국 무사들은 원기병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싸우게 되고 전투를 모두 끝내고 홀로 쓸쓸히 고려를 향해 귀환한다.

제31대 공민왕 이후

 극중 시대적 배경은 1375년 고려 우왕 치세기로, 한반도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중국 대륙에서는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이다. 고려는 공민왕 시해사건과 명사신 살해사건으로 인해 명나라와 관계가 악화되자 사신을 보내지만, 관계가 좋아진 후에도 일부 사신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실제로 고려에서 보낸 사신이 명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역사를 토대로 만들었다. 우왕이 집권하던 시기 고려는 군부의 재정난과 몽골식 부호제의 영향으로 사병 집단화되어 있었고 장수들 역시 무능한 자들이 많았다. 또한 중국은 북으로 쫓겨난 북원과 새로 일어난 명나라가 각축을 벌이고 있어 혼란스러웠고, 내정은 이인임 등이 국정을 농단하는 동안 권문세족들이 대토지를 독점하고 백성들을 사노비화했으며 절 등 종교 세력들 역시 대토지를 소유해 신도들을 종으로 부리는 등 갑질의 시대였다. 홍건적 등 외침이 잦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왜구의 침입 격퇴에서 최영, 이성계, 최무선의 화포가 맹활약을 펼쳤고 이성계는 왜구 격퇴 과정에서 최영에 버금가는 무장으로서의 입지와 명성을 굳히게 된다. 위화도로 출전하기 전부터 <4불가론>을 들어 반대한 이성계는 조민수 등과 함께 군대를 돌려 개경을 포위한 후 함락하고 최영을 제압한 뒤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결국 우왕은 다시 꼭두각시 군주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