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산적
주인공은 고려의 하급 군관이었으나, 조국에 대한 충성심은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장군의 위화도 회군에 반기를 들어 군을 이탈한 뒤 차라리 산적이 되겠다하며 산적이 된다. 산적이 된 이후에는 '송악산 미친 호랑이'라는 별호까지 얻었지만 실제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다가 우연히 들려온 고래가 조선이 명나라에서 받아온 국새를 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무작정 바다로 떠난다. 국새를 찾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능글맞고 유들유들한 성격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검술과 강단 있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결국 소마와의 싸움에 휘말려 부하들을 잃고 여월과 함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될 때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여월을 살려내기도 하고 여러 고생을 한 끝에 부하들과 다시 만나고, 여월에게 함께 산으로 갈 것을 제안하지만 여월에게 쿨하게 거부당하고 육지로 돌아온다. 하지만 모흥갑의 관군이 멀쩡한 마을을 해적 소굴로 몰아세우며 몰살시킨 끔찍한 현장을 목도하고 결국 폭발하여 다시금 철봉이를 앞세워 바다로 향한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직 틀을 갖추지 못해 어지럽던 시기에 어려운 환경을 살펴보고 주변인물들을 살뜰히 챙기는 주인공이라 지금의 세태에는 저런 인물이 왜 없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래를 잡아 옥새를 찾으라
고려의 하급군관인 장사정은 이성계의 반역행위를 본 후, 역적이 될 수 없다며 부하들과 탈영을 해버고 앞을 가로막은 모흥갑과 싸우다가 모흥갑을 애꾸로 만든다. 조선의 건국 시작부터 신진사대부들의 주도하에 철저히 사대주의였던 조선은 대국인 명나라에서 국호와 국새를 받아올 예정이었으나 국새를 실은 배에 고래가 나타나서 국새를 먹어버립니다. 탈영을 한 장사정 무리는 산적질 중이었으나 제대로 된 노략질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배고픈 거지 산적단이 되어 있습니다. 이때 국새를 고래가 먹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국새를 찾아 부귀영화를 꿈꾸며 찾아나서기로 합니다. 소마의 해적단에서는 소마의 악행에 참다못한 2인자 여월이 흑묘의 도움으로 반기를 들고 우두머리에 오릅니다. 이때 조정에서 해적단의 배로 찾아온 관료가 해적단이 국가의 국새를 훔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과 옥새를 찾아주지 않으면 육지에 있는 해적의 가족들을 다 죽이겠다는 협박을 합니다. 그래서 해적단은 고래찾아 옥새를 구하기위해 고래사냥을 시작합니다. 한편 모흥갑은 해적소굴이라며 백성들을 마구 죽이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큰 배가 필요한 장사정이 모흥갑의 군영에 들어와서 배를 훔쳐 달아납니다. 선단을 잃은 모흥갑은 소마와 함께 서로 해적단과 산적단에 복수할 계획을 함께하여 여월과 장사정을 제외한 해적단과 산적단의 구성원들을 잡아버립니다. 부하들을 잃은 여월과 장사정은 같은 처지가 되자 같은 편이 되어 싸우기로 하고 이렇게 붙은 전투에서 장사정과 여월이 바다에 빠지는 위기도 겪지만 국새를 먹었던 고래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해줍니다. 그리고 소마는 자신을 방해한 고래를 죽여버립니다. 고래가 죽자 고래의 뱃속에 있던 국새는 찾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국새를 못 찾은 조선의 관료인 한상질는 하옥되고,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 아니라는 이성계의 깨달음으로 속국이 아닌 상태로 11년간 버텼다는 내용이 나오며 끝납니다.
조선 건국 이후
조선이 건국된 후 행정이나 국방 등 정책적으로는 정도전, 조준을 재상으로 세우고 과전법 같은 대대적인 토지개혁을 하였으며 국방에도 힘써 왜구들의 대규모 침략을 대마도 정벌 등을 통해 조선 건국 이후로는 완전히 종식시킴으로서 새 왕조의 기틀을 닦는 작업은 충실하게 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계의 정치 스타일은 불도저처럼 유능한 주변 재상들을 자신의 막강한 권력으로 팍팍 밀어주는 보스 기질도 충분했고 한 나라의 창업자답게 친화력과 포용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한 가신들이 정몽주를 제거하자고 말했지만 태조는 정몽주와 인연으로 신진 사대부와 연결된 것이며 정몽주와 정치를 논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일 등이 잦았고 그래서 끝까지 정몽주를 포용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자기 주관도 너무나 강한 나머지 한양 천도도 자신의 강력한 입김으로 강행했으며 1년 만에 도성의 공사를 완료했을 정도였다. 태조 치세 중에는 제3차 요동정벌이 제기되었으나 이성계 자신이 3차 요동정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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