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신분에서 고위급 관리까지
주인공은 어머니가 관아의 기생인 출신이라 노비종모법에 따라 동래현의 관노로 태어났으나 어렸을때 어머니를 잃고 신세한탄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지 아니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써서 기술자로서의 뛰어난 재주를 보여 태종에게 인정받아 발탁되었으며 세종은 실용주의자로서 주인공의 적성을 중요히 생각하여 부왕의 뒤를 이어 중용하였다. 노비였던 주인공의 기재를 알아본 주군에 의해 당시의 대국이었던 중국에까지 보내어져 각종 천문, 장비 등의 기술을 익혀 오고 주군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아래 자신이 가진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로인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신분의 족쇄인 노비를 벗어나고 벼슬을 하사받는 등 신분이 격상한다. 또한 세종이 중국과는 천문이 다른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와 옥루를 만드는 등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나 어느날 세종대왕이 직접 타는 어가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조정에서는 이를 임금에 대한 불경죄로 간주하고 의금부에서 책임을 물어 곤장 80대와 삭탈관직을 구형했으나, 임금이 형벌을 2등을 감해 주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이후 역사에서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생각해보면 어렸을때 어머니를 여의고 자포자기하며 자칫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주저 앉을수있으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중용해준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살아갔다. 요즘 조금만 힘들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세태에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자 하다
궁궐의 앞에서 세종과 세자, 대소 신료들은 명나라 사신 오양의 조서를 기다리고 있고 사신은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천문 연구를 한 죄를 물어 천문기구를 파괴하고 제작자를 명으로 압송하라'고 명한다. 세종이 조서를 듣고 분개하여 쓰러진 후, 의정부에선 장영실의 거취와 간의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한편, 선공감에서 장영실은 세종이 탈 안여를 점검하는 도중 사임이 서운관에 간의를 비롯한 천문관측기기를 실어나르고 있다고 하자 장영실은 안여 문을 박차고 나와 서운관으로 황급히 뛰어가서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어명이란 말을 듣고 허망해한다. 주인공은 천문기구를 실어빼가는 상황을 억울해하며 세종을 만나 본인이 명나라의 기술을 훔쳐 만든 도둑놈이냐고 울부짖지만, 싸늘한 표정의 세종은 장영실에게 이제 그만하면 쉴 때가 됐다고 말하는데 표정은 어둡다. 세종은 명나라에서 가지고 온 문서가 눈보라에 젖어 훼손되었는데 완벽하게 복구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장영실은 부름을 받고 긴장하며 세종앞에 나와 큰 절을 올린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명나라에 있는 물시계를 만들 수 있는지 묻자 장영실은 조선의 것, 조선에 맞는 것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물시계를 만들러 서운관에 책을 찾아보던 도중 최천구에게 어디 노비가 서운관 안에 발을 들이냐며 뺨을 맞다는 와중에 지금 당장 임금에게 갈 것을 명받는다. 도착한 장영실은 세종이 자기를 면천하고 벼슬을 내릴 것을 듣게 되고 교지를 듣고 감격하여 흐느껴 운다. 그러나, 장영실의 벼슬을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한편 장영실은 야심한 밤을 세워가며 자격루의 설계도를 완성하게 되고, 대소신료들 앞에서 장영실이 직접 시연하고 물시계 작동 후 미초시에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타종 소리와 함께 성공리에 제작하였음을 알린다. 세종은 이제 밤이 되어도 해시계 없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어느 밤 세종과 장영실은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 보고 각자의 소회를 풀고 있다. 별을 보고 있던 세종은 장영실에게 조선의 간의를 만들라 말하고, 장영실은 그리 하겠다고 답한다. 세종의 바람대로 천문 관측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장영실은 이번사안에 총괄 감독하며 설계를 맡고 이순지, 윤사웅과 최천구는 현장을 감독한다.
어느 날 밤에, 세종은 마침내 완성된 간의대에 오른다. 신하들이 간의대 아래 모여 있는 가운데 장영실이 간의를 이용해 천체를 관측한다. 그 결과 조선에서 본 별자리가 중국과 다르고, 조선이 중국 남경보다 시차가 반 시진 빠르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다시 안여 사고 3일 전, 간의를 간의대에서 철거하고 각종 천문기기들에 불을 붙이고 장영실은 사헌부로 끌려간다. 안여에 탄 세종은 요양하러 온천행을 떠났고, 그 말을 들은 장영실은 세종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원망의 울분을 내뱉는다. 안여사고 1일전, 결국 장영실은 참담한 표정으로 함거에 실려 명나라로 압송되고 장영실의 서운관 옛 동료들과 제자는 함거를 붙잡으며 ‘우리 나으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끌고 가느냐’며 울부짖는다. 온천행을 다녀오던 세종이 탄 안여가 빗속 흙탕물에 바퀴가 빠지며 바퀴축이 부러져 떨어졌으나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세종은 천천히 일어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이천에게 지금 바로 한양으로 가 숭록대부 조말생을 만나라 이른다. '장영실이 만든 안여는 절대 우연히 부서질 수 없다'며 이 일에는 분명히 배후가 있다고 이르고 배후가 있다는 말에 당황한 이천에게 조말생은 세종이 미리 자신에게 상방보검을 내려 군권을 주었음을 알리며, 이천에게 병조의 지휘권과 정예 방패병 1500명을 주어 장영실을 잡아들이라 명한다. 병사를 데리고 장영실을 따라간 이천이 강화도에서 잠시 쉬던 명나라 사신과 장영실 등 일행을 “죄인 장영실을 비롯한 연회에 있는 모든 자들을 잡아들일 것”을 명하며 이에 반발한 정남손을 향해 어명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뒤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을 체포, 한양으로 압송한다. 명나라와 내통한 파를 숙청하려다 좌절한 세종은 안여 사고는 사실 자신이 꾸민 일이었음을 알리고 장영실을 아무도 찾지 못하는 먼 곳으로 숨어 살라고 보내지만 장영실은 다시 옥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누워 무너진 옥의 천장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세종의 꿈인 한글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날 국문이 열리고 장영실은 스스로를 희생시켜 한글을 창제해달라는 뜻을 전하고, 장영실의 진심을 안 세종은 오래도록 장영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슬픈 웃음을 짓는다.
장영실 파직 이후
사실 장영실의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안여사건 이후 처분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장영실은 의금부에서 80대의 장형을 받고 파직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후 복직을 했는지 완전한 파직이었는지 조차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 뒤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언제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안여사건 당시 장영실의 나이는 60세를 넘겼거나 그 이상이 되었을텐데 조선시대를 보면 그 나이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다시 말해 처벌을 받고 물러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노환으로 죽었거나, 병세 등으로 복귀가 힘들었다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때 씌여졌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세종대왕은 안여사고로 장영실이 처벌 받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신하들이 불경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상소도 올리고 매일 읍소를 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당시, 신하들의 여론이 들끓어 잠시 파직하거나 귀양을 보냈다가 다시 복직시키는 경우는 매우 흔했다. 실제로 안여사건으로 처벌되었던 장영실을 제외한 인원들은 얼마 후 다시 복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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